책 속으로 난 길

금요일(2006. 2. 17)의 <<한겨레>> (1)

귤밭1 2006. 2. 19. 08:00

나는 농담 비슷하게 <<한겨레>>가 있어서 살 맛이 난다고 말할 정도로 이 신문의 애독자다. 그래서 신문은 물론이고 여기서 내는 <<한겨레 21>>도 정기 구독하고 있다. 물론 요즘에 와서 <<한겨레>>가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내부에서조차 초심을 잊었다고 하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를테면 홍세화 기자는 <<한겨레>>가 초심을 잊어먹고 소비 지향 풍조에 동조하고 노동 운동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겨레〉의 초심은 오늘 지면 어디에 남아 있을까? 가령 한국 신문들은 ‘주택’면이 없는 대신 모두 ‘부동산’면을 두고 있다. 한겨레도 예외가 아니다. 부동산이 투기의 대상, 재테크의 수단이 된 한국 사회를 반영한다고 하겠지만, 적어도 한겨레는 초심이 살아 있다면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조건인 주거 공간을 부동산으로 한정할 수 없다. 하다 못해 부동산 사업을 주로 하는 주택공사도 이름만큼은 부동산공사가 아니라 주택공사다. (중략)

 

오늘 한겨레에서 초심을 찾기 어려운 점은 경제면과 사회면의 불균형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경제와 사회의 균형은 성장과 분배의 균형이며, 소비자와 시민 사이의 균형이다. 정부 부처도 사회부문과 경제부문은 서로 긴장하며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 한겨레의 사회부문 기사는 사회면뿐인 데 반해, 경제 기사는 경제면뿐만 아니라 자동차, 재테크, 부동산, 소비생활, 글로벌기업, 증권에다 ‘기업시민’이라는 알쏭달쏭한 면까지 있다. 이를테면, 사회부문은 ‘노동’이 한 면도 없을 만큼 위축되어 있는 반면, 경제 기사는 새끼를 쳐 특화된 면이 한둘이 아니다. (중략)

 

언제부턴가, 한겨레는 노동운동을 비롯한 시민사회 운동 관련 기사를 사진으로 대신하는 데 익숙해졌다. 자동차, 재테크 면을 채우다 보니 더욱 부족해진 지면 상황에서 시민사회 활력소들을 소개할 지면도 인원도 부족해 관련 사안을 분석하고 전망하는 기사를 쓰기 어렵다면 차라리 사진도 싣지 않는 편이 낫다. 사진은 과정을 보여주지 않은 채 최후의 갈등과 투쟁 모습을 담기 쉬우니만큼 독자들에게 사회 변화 동력들을 투쟁 일변도의 이미지로만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홍세화, <한겨레의 초심은 어디에?>, 글 전문)

정확한 지적이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비판적으로만 볼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독자 대중의 성향에 호응하려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흐름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옳은 시각이라고 해도 독자가 읽어 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세상에 기대어 실상은 속물이 된 내 처지를 변명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지만 사람들 자체가 많이 바뀐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다른 신문과의 차별성도 높이 사줘야 한다. <<한겨레>>가 아니라면 우리 사회에서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라든지 진보적인 관점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대중의 차원에서 가능했을까 하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신문의 역할은 여전히 아주 중요하다. 노동 운동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 것은 신문의 논조가 바뀌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노동 운동이 전체 사회 운동의 대의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 더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의 민주노총은 내부의 민주주의조차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내부의 쓴 비판을 자기 신문에 싣는 것 자체가 이 신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점도 덧붙여 두기로 하자.

 

아무튼 나는 이 신문이 바뀌었다고 해도 여전히 애독자의 자리에 남아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집에 있을 때는 금요일 아침이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다. '18.0도'라는 제목의 '책과 지성 섹션'이 나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걸 읽기 위해 평소보다 더 일찍 잠을 깬다. 미리 말한다면 한 권의, 여러 주제를 담은 작은 책이다. 오늘의 내용을 살펴보면 여러분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오늘의 커버 스토리는 베네스엘라의 대통령 차베스의 개혁에 대한 기사다. 이 이는 알다시피 남미에서 좌파 정권이 득세하는 데 쿠바의 카스트로와 더불어 앞장서고 있다. 우리에게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맞설 현실적인 대안으로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미국의 사주를 받은 반혁명의 움직임을 거뜬히 이겨냈다. 물론 민중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베네스엘라는 세계의 5대 산유국인데 나라 살림의 반을 차지하는 석유에서 나온 이익을 민중에게 배분하고 있다.

집권 이후 차베스 정부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과업은 석유이익을 민중에게 돌리는 일이었다. 요컨대 베네수엘라 사회동력은 간명하게 말해 민중과 석유다. 그 구체적 사업이 미션이다. 의무교육이 없는 베네수엘라에서 문명퇴치와 사회학습을 위한 미션 로빈슨, 미션 리바스, 미션 스쿠레를 비롯하여, 쿠바 의사 1만 명 이상이 투입되어 설립된 민중병원 미션 바리오 아덴뜨로(마을 속으로)에서는 24시간 3명의 의사가 무료진료를 하고 있다. 자본가 파업시기에 자연스레 형성된 민중시장을 토대로 세우게 된 미션 메르깔은 유통과정의 이익 없이 민중들에게 생필품을 제공하고 있다. 그밖에 무관심 속에 거리에 방치된 사람들을 사회로 복귀시키는 프로그램인 미션 네그라 이뽈리따, 토지개혁 미션 자모라, 원주민 지원사업 미션 과이콰이프로까지 사회개혁사업은 폭 넓게 진행되고 있다.

 

“이전에는 병원에 가는 것 자체를 포기할 정도였다. 지금은 아무 때나 갈 수 있다. 나 또한 병원운영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대표적인 빈민촌 라베가 민중병원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말이다. 차베스에 대한 민중의 지지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베네수엘라 청년 5천여 명이 의사공부를 하러 쿠바에 건너가 있다. 쿠바사람들이 떠나면 이내 그들이 민중병원에 들어올 참이다.(서해성, <비바! 차베스 '개혁의 살사 리듬'>, 글 전문)

이런 개혁이 성공하려면 앞으로 그야말로 첩첩산중의 험로를 걸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위협이 길을 가로막을 것이다. 내부의 반발을 극복하는 과제도 만만치 않다. "어쨌든 한가지 분명한 것은 차베스 정권의 성패 여부가 우리를 포함해 제3세계의 민중에게는 생동하는 시금석이라는 사실이다."(위의 기사)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우리의 불쌍한 처지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마음이 설렌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바로 이 글과 남미의 새로운 기운을 전달하는, 이제 곧 소개할 다른 글 때문이다. 이 희망을 베네스엘라 사람에게서 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거리에서 세계사회포럼 벽화를 그리고 있는 화공 루이스 미구엘은 비로소 미래가 인간적일 수 있겠다고 믿게 된 건 근래의 일이라고 했다. 어설픈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함께 소유하는 일, 그것이 바로 제대로 된 미래다. 진보란 미래를 칼로 베어 쳐서 오늘로 가져오는 일이다.(위의 기사)
이 기사는 "19일 오후 8시 방영될 ‘KBS 스페셜’의 현지 취재팀 동행 취재기임"을 밝히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며 개혁의 훈훈한 바람을 맞으면서 희망을 나눠 가져 보자. 살사 리듬에 맞춰 춤까지 출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이제 4쪽으로 넘어가자. 쿠바 현장 탐방기다. 연재 기산데 오늘이 4회째다. 실린 사진에는 카스트로와, 바로 앞에서 본 차베스가 껴안고 있다. 이에 걸맞게 기사의 내용도 쿠바와 베네스엘라의 연대를 들려 주고 있다.

1990년대 쿠바가 직면한 위기는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는 고립무원의 위기였다. 혁명의 수출은 커녕 혁명의 몰락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쿠바에게 1999년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선거에서 우고 차베스가 당선된 것은 극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2000년대 쿠바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베네수엘라와의 무역협정으로 가능해진 원유의 공급에 힘입은 바가 크다. 94년 일일 2만배럴의 생산량을 2004년 7만5천배럴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렸지만 여전히 필요량의 50퍼센트를 수입에 의존해야하는 쿠바에게 베네수엘라의 원유공급은 가뭄의 단비를 넘어선 것이었다.

 

군부의 쿠데타와 신임투표의 파고를 헤쳐 나가야 했던 차베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차베스의 발목을 잡았던 것은 그가 공언했던 사회주의적 개혁이 부딪혀야 했던 난공불락의 벽이었다. 빈민을 정치적 기반으로 했던 그가 약속했던 의료와 교육의 개혁은 지배계층의 편에 서 있던 의사와 선생들의 저항으로 무산의 지경에 이르러야 했다. 2000년 쿠바와의 자유무역협정은 극적인 활로를 열었다. 쿠바에 원유를 공급한 대금의 일부로 베네수엘라에 쏟아져 들어온 2만여명의 쿠바 의사들은 베네수엘라의 의사들이 가기를 거부했던 빈민들의 산동네를 점령했다. 10만명의 교사 자원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 쿠바의 교사들이 투입되었고 교육받은 자원자들은 빈민과 농민의 주거지역에서 성인문맹퇴치에 나서고 있다. 쿠바의 교육프로그램인 ‘나는 할 수 있다(Si se puede)' 또한 베네수엘라에서 제 몫을 해내고 있다. 오가노포니코와 같은 농업개혁 또한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이미 응용되고 있다.(유재현, <유재현의 쿠바 탐방기 (4)- 제2, 제3의 쿠바들: 아바나의 좌파 바람 중남미를 뒤흔들다>, 글 전문)

이런 연대는 두 나라의 영역을 넘어서서 중남미에서 '사회주의와 국제주의에 기초한 관계'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원유를 가진 베네수엘라와 라틴아메리카 최고의 의료부문과 교육부문의 자원을 가진 쿠바의 국가간 협력모델은 천연가스를 가진 볼리비아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재현될 것이고 농축산의 칠레, 광물의 페루 등의 나라들에 좌파정권이 들어서고 유지되는 데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이 우려하고 있는 것처럼 이런 협력관계는 우후죽순으로 번지는 라틴아메리카의 좌경화에 탄력을 불어넣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미국의 앞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모반의 바람이 1973년 칠레의 아옌데 사회주의정권이 넘지 못했던 벽을 넘어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불고 있다는 것이다.(위의 유재현의 글)
이 기사와 함께 지난 주의 탐방기를 소개하는 것도 좋겠다. 쿠바의 무상 교육에 대한 내용인데, 참담한 우리 교육 현실과 비교하기 위해서도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아니, 내 마음을 솔직히 드러낸다면, 꼭 읽어야 한다.

이 모두 공짜라니 부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교육을 비용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무상이라고 해서 훌륭한 교육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심지어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해서 훌륭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그 보다는 사회와 교육이 어떻게 동거하고 있는지가 더욱 중요하게 마련이다.

 

쿠바의 교육을 폄하할 때 흔히 등장하는 의사를 살펴보자. 의사의 월급은 5-600페소이다. 일반 노동자보다는 조금 높은 편이지만 의사의 주거이전을 제한하는 쿠바정부의 방침과 교육기간 동안의 불이익을 고려하면 높은 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경쟁교육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래서야 누가 의사가 되고 싶어 할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쿠바에는 인구170명 당 한 명이 배치될 수 있는 6만7천여 명의 의사가 현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한국의 4배에 달한다. 쿠바에는 또한 (학생이 아닌)인구 36.8명마다 한 명의 선생이 있다. 선생의 월 급여는 400페소 수준이다. 누가 선생이 되고 싶어 하고, 누가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이런 물음을 던지는 우리들은 왜 누군가 기술자나 노동자가 되고 싶어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궁금해 하지도 않는 것일까?

 

아바나의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로 일하고 있던 산업공학을 전공한 대졸 출신의 젊은이에게 물었다. ‘접시를 나를 바에야 산업공학은 무엇 때문에 공부했어?’ 짓궂은 질문이었다.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그는 ‘적성에 맞았고 재미있어서 했다’고 대답했다. 그는 교과서적으로 정답을 말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누군가보다 앞서기 위해 입문하는 것이 인간적인 교육은 아닌 것이다. 인간적인 교육을 사회가 보장함으로써 쿠바에서 사회와 교육은 이 상식선에서 동거하고 있다.

 

인간적인 교육은 유전자적인 다양성에 기초한다. 누구에게나 잘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일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 사회가 그것에 순위를 매기고 경쟁에 교육을 이용한다면 교육은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

 

1천2백만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6만7천명의 인간들이 의술을 공부하고 싶어 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4천8백만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6만4천명만이 의술을 공부할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 뼈아픈 일이다. 교육의 성과로 배우고 익히게 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대가란 성취감일 것이다. 의사라면 아픈 사람을 낫게 한 것, 선생이라면 아이들이 배우게 된 것, 기술자라면 기술이 빛을 발 한 것, 농민이라면 농산물을 생산한 것이 성취감이다. 이 다양한 성취감을 오직 ‘얼마를 벌었는지’로 치환하는 사회라면 인간적인 교육 또한 제자리를 찾을 수 없을뿐더러 그 사회가 필요한 인력 역시 제대로 육성해낼 수 없다. 경쟁교육은 긴요한 분야일수록 언제나 턱없이 못 미치는 인력만을 공급할 뿐이다.

 

배급과 교육의 예를 들었지만 쿠바는 우리와 다른 사회이다. 모든 이질적인 문화가 그렇듯이 이질적인 체제 또한 영감을 준다. 가치 있는 영감을 얻으려면 보려는 사회의 프리즘으로 비추어보아야 하다. 달러로 환산된 수치만으로 그 나라를 평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평균임금 1만2천원과 217만5천원 사이에 181배의 차이가 존재한다면 한 아이의 교육비에 1억 원 이상을 지출해야 하는 사회와 한 푼도 지출하지 않는 사회 사이에는 몇 배의 차이가 존재하는가. 외진 두메산골의 보건소에 의사와 치과의사, 간호원 1명을 두는 사회와 의사를 찾기 위해 읍으로 도시로 향해야 하는 사회 사이에는 몇 배의 차이가 존재하는가. '사'자 돌림과 일반 노동자와 실업자의 사이에 넘지 못할 간극이 존재하는 사회와 평등의 가치를 주장하는 사회 사이에는 몇 배의 차이가 존재하는가.(유재현, <유재현의 쿠바 탐방기 (3)-쿠바의 무상교육: 의사 월급 2만원 그래도 즐거운 의대생>, 글 전문)

며칠 전에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 들은 얘기다. 요즘에는, 전공은 따지지 않고 거의 무조건 이른바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택하던 우리 때와는 아주 다르게 대학의 지명도와는 관계없이 의대 입학생들의 수능 점수가 제일 높단다. 그러니까 서울대의 경우에도 법대나 치의대를 빼고는 이런 의대 입학생들의 점수보다 낮다는 얘기가 된다. 교육의 내용이나 질과 따로 노는 이른바 일류대학의 허울을 깨뜨리는 측면에서는 반가운 현상이기도 하지만 제일 똑똑한 아이들이 거의 하나같이 의대나 법대로만 쏠리는지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오히려 슬퍼해야 하는 일이다. 머리가 좋은 아이들은 골고루 각 분야에 퍼져서 그 능력을 발휘해야 마땅하다. 좋아서 무슨 일을 즐겁게 해야 한다. 똑똑하다는 이유로 법대나 의대로 간 아이들이 과연 그렇게 할까? 부정적으로 대답해야 할 이런 질문이 나오자 위에 옮겨 놓은 구절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

교육의 성과로 배우고 익히게 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대가란 성취감일 것이다. 의사라면 아픈 사람을 낫게 한 것, 선생이라면 아이들이 배우게 된 것, 기술자라면 기술이 빛을 발 한 것, 농민이라면 농산물을 생산한 것이 성취감이다. 이 다양한 성취감을 오직 ‘얼마를 벌었는지’로 치환하는 사회라면 인간적인 교육 또한 제자리를 찾을 수 없을뿐더러 그 사회가 필요한 인력 역시 제대로 육성해낼 수 없다. 경쟁교육은 긴요한 분야일수록 언제나 턱없이 못 미치는 인력만을 공급할 뿐이다.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신이 나는 법인데 우리는 저 남미의 현실에서 실제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남미 얘기를 마칠 수는 없다. 말이 나온 김에 역시 지난 주의 이 '책과 지성 섹션'에 나온 김선우 시인의 글도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볼리비아의 새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의, 작은 마을에서 쇠고기를 팔다가 퍼스트 레이디가 된 누이에 대한 얘기면서 앞의 글들과 마찬가지로 변화에 대한 희망으로 설레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기 직업이 미천하니 퍼스트 레이디라고 부르지 말라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힘을 쏟겠다고 했단다. 역시 이 나라에도 희망이 넘친다.

뿌리 깊은 서구 중심 사고와 교육의 영향으로 ‘후진적인’ 개발도상국들이 모여 있는 먼 곳쯤으로 치부되기 일쑤인 남미에서 나는 종종 환하고 역동적인 힘을 느낀다. 세계 도처에 끊이지 않는 전쟁과 분쟁이 인간사회의 퇴행적 역동성을 증거한다면 체 게바라 이후 사파티스타에 이르기까지 남미가 가진 현재형의 혁명적 기운에는 희망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다층적인 역동성이 있다. ‘반미’를 노골적으로 표방하는 가난한 사회주의 나라이면서 농업혁명을 통한 식량 자급자족과 다양한 유기농업의 놀라운 모델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쿠바, 정치적 혼돈과 대립의 악순환 속에서도 ‘가비오따스’라는 독창적이고도 놀라운 생태공동체가 존재하는 콜롬비아, 도시혁명의 산뜻하고 유쾌한 실험 모델인 꾸리찌바가 존재하는 브라질, 아메리카 원주민의 지혜를 자율적인 열정으로 현대적 혁명과 접목시키고 있는 멕시코 민족해방군 사파티스타. 미국과 신자유주의의 맹위에 맞서 봉기한 사파티스타 전사들은 너무도 당당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정글은 500년간 우리 삶의 터전이었다. 우리는 정글을 맥도널드, 고속도로, 호텔 따위와 바꾸고 싶지 않다.”

 

이런 힘, 이런 자존심, 이런 열정과 꿈꾸기. 아랍세계와는 또다른 측면에서 반미-탈미의 움직임을 구체화시키고 있는 남미 여러 나라들의 행보 속에서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이 된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그가 자신의 대통령 월급을 절반으로 깎았다는 얘기나, 해외순방외교의 현장에 원주민 의상인 알록달록한 알파카 스웨터를 입고 다닌 얘기, 의상의 파격에 대해 각국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대통령 취임식 때조차 정장을 입지 않은 얘기 등을 들으며 나는 유쾌했다. ‘정장’이라고 ‘제도화된’ 서구 중심의 의상문화에 대해 ‘도대체 니들이 강요하는 ‘정장’이 뭔데? 나는 그냥 우리 조상들이 입던 옷 입을래’라고 심드렁하게 되묻는 듯한 뚝심에 슬그머니 미소가 나왔다. (김선우, <"나를 퍼스트 레이디로 부르지 말라">, 글 전문)

주제와는 거리가 있지만, 김선우 시인의 글들은 내게 부러움과 함께 질투심을 갖도록 한다. 부끄럽게도 그의 시를 읽어 보지 못했는데 그의 산문에서 나타나는 감수성으로 미뤄 보건대 틀림없이 시도 좋을 것이다. 구체적인 예로 이 섹션에 실렸던 을 읽으면 여러분도 내 판단에 동조하리라 믿는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소개해야 할 글이 많이 남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어떤 소설의 구절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래, 느릿느릿 가기로 하자. 그렇다면 그 부분도 옮겨야겠다.

계단 두 개를 내려가는 동안에 지나친 것들을 가지고 두 장(章)을 소비한다면 이건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왜냐하면 아직 우리는 첫번 층계참에까지밖에는 오지 못했고, 열다섯 개의 계단을 내려가야 밑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또 내가 아는 바로는 현재 아버지와 토비 숙부님 사이에는 이야기의 분위기가 잔뜩 무르익어 있으므로 그걸 쓰자면 계단 수만큼이나 많은 장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로렌스 스턴, <<트리스트럼 샌디>>. 앤 제퍼슨, <러시아 형식주의>, 앤 제퍼슨, 데이비드 로우비, 최상규역, <<현대비평론>>, 형설출판사, 1985, 50쪽에서 재인용)
다음은 늘 가슴을 여미면서 글을 읽게 만드는 서경식의 이다. 이 이가 누군지 아는가? 그의 책에 실린 해설에서 인용해 보자.

소년 경식의 성장 과정에는 형들의 영향도 컸다. 특히 둘째형 서승의 영향은 가히 심대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이후 둘째형 서승, 셋째형 서준식과 더불어 2층에서 생활하게 된 뒤부터는 특히 그랬다. 서승은 유난한 책벌레였다. 그래서 경식은 서승이 읽고 여기저기 늘어놓거나 벽장 안에 깊숙이 넣어둔 책마저도 같이 읽고 자랐던 것이며, 형이 들려주는 동서고금의 재미나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매일 밤 잠자리에 들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풍요로운 형제 사이런가! 서승과 서경식 두 형제 가운데 끼인 셋째형 서준식이 둘째형 서승에게 반발하는 미묘한 모습까지 서경식은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이런 광경은 어디서고 볼 수 있을 법한 모습인 만큼 재미있기도 하다. 여기에 등장하는 서경식의 둘째형과 셋째형은 한국의 군사정권에 정치범으로 체포당해 오랜 세월 옥고를 치른 서승과 서준식 형제라는 사실은 독자 여러분께서 잘 알고 계실 터이다.(이시카와 이츠코, <해설: 일상에서 보편의 세계로-서경식, 그의 행보에 대한 공감>, 서경식, 이목 옮김, <<소년의 눈물>>, 돌베개, 2004, 247쪽)
위에서 나왔다시피 '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각각 19년, 17년의 옥고를 치른 서승과 서준식의 동생인 것이다. 그는 재일교포다. 그의 할아버지 때 일본으로 들어갔다 한다. 늘 이산(離散, 디아스포라)를 명징하게 의식하면서 사는 경계인이다. 그러니 일상에 잠긴 사람들이 그냥 넘겨 버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이 때문에 이 이의 책을 보게 된다. 앞의 책을 고른 것은 소년이었을 때 도대체 무슨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하는 호기심도 많이 작용했다. 최근에 <<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돌베개, 2006)이 번역되었는데 물론 이 책도 구미가 당겨서 내 독서 목록에 올려 놓았다.

 

다음은 '국내 최초 애니메이션 여자 감독'인 채운경과의 인터뷰 기사인데 만화나 만화 영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나는 이제까지 만화를 본 적이 없다-이 꼭지는 그냥 넘기기로 하고 '침팬지 엄마'인 제인 구달의 <<희망의 밥상>> 서평 기사를 소개하기로 하자.

 

* 2회는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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