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섬진강 도보 여행 3: 곡성에서 구례까지(2. 24)

귤밭1 2006. 3. 8. 09:55

구례에 무사히 왔습니다. 30Km가 채 안 되는 거리라 일찍 도착하여 목욕-여관이 목욕탕과 같이 있어서 돈 안 내고 했어요-도 했습니다. 길이 좋았던데다가 몸까지 가뿐하여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곡성에서 구례로 오는 길은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17번 국도로 섬진강을 따라 오른쪽으로 나 있는데 이 구간을 달리는 모든 차는 이 길로 다닙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다른 또 하나의 길에 대해서 들으면 여러분도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그 길은 강의 왼쪽으로 나 있는데 도로의 번호조차 없습니다. 곡성에서 17번 도로에 들어서자마자 맞은 편으로 갈 수 있는 다리(사진 1, 사진 2. 잠수교라고 해야 할까요? 공사 차량은 모를까 보통의 차는 다니지 못할 것 같습니다)가 보이는데 그것을 건너가면 정말 여간해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행복한 길을 만나게 됩니다. 이 길에 들어서서 두 시간 동안이 특히 그렇습니다. 포장조차 되어 있지 않은 조그만 길이거든요. 거기다가 강둑길과 달리 한쪽으로는 숲이 있으니 자연의 맛을 한껏 즐길 수 있습니다(길의 모습들: 사진 1사진 2사진 3사진 4). 차는 아예 없다고  해도 좋습니다. 걷는 동안에 두 댄가를 만났을 뿐이니까요. 강물은 햇빛을 받아 은빛 비늘을 반짝이면서 흐릅니다(사진). 시인이었다면 시가 저절로 나왔을 것만 같은 정경이지요. 좋은 것을 아끼는 심정이 되어 나는 이 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러니 지치지도 않았지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친 줄도 몰랐지요. 이 길이 오래도록 포장이 되지 않은 채로 남아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것은 오래 가지 않는 법인가 봅니다. 아쉬움이 시간을 빨리 가게 한 건지도 모릅니다. 두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이 행복한 길도 번듯하게 이차선으로 포장된 길로 바뀌고 맙니다. 여기라고 해서 어디 개발의 광풍이 비껴가겠어요! 아닌 게 아니라 여기저기 공사도 하고 있었고 관광지로 개발된 흔적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괴상한 이름의 가든이 들어선 것은 이제 전국적인 현상이니까 말하는 사람이 입만 아플 뿐이고요. 온갖 문명의 혜택을 다 누리면서 이곳 사람들에게만 그대로 있으라고 하는 것 같아 면목이 없지만 좋은 관광지가 되기 위해서도 되도록 자연 그대로를 보호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사람의 손이 많이 갈수록 강의 모습이 볼품이 없어지는 것을 나는 확인하였습니다. 강가에 자연스럽게 나무와 풀이 자라게 해야 할 텐데 놀이터나 자전거 길을 만들다 보면 자연스러운 강가의 모습이 훼손되고 맙니다(사진들: 사진 1사진 2사진 3사진 4, 사진 5).

 

그래도 이 길도 다른 길에 비하면 상급입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길 가운데로 걸어가도 괜찮을 정도로 차가 드문드문 다니니까요. 어제 오늘은 참으로 행복하게 걸었습니다. 섬진강을 걸으실 분들께는 꼭 이 길을 권하고 싶습니다. 누구든지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틀림없이 이 길의 매력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내일은 하동으로 가서 이번의 여행을 마칠까 합니다. 이번에도 작은 길을 택하려고 하는데 번호가 있는 것으로 봐서 오늘 처음의 길만은 못할 것 같습니다.

 


<사진 몇 장>

 

사진 1,   사진 2,   사진 3,   사진 4,   사진 5,   사진 6,   사진 7,   사진 8,   사진 9,   사진 10,   사진 11,   사진 12,   사진 13,   사진 14,   사진 15,   사진 16,   사진 17,   사진 18,   사진 19,    사진 20,   사진 21,   사진 22,   사진 23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