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수목장 어때요?

귤밭1 2006. 3. 14. 00:19

도보 여행을 하다 보면 보기 싫은 장면과 마주치게 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납골묘나 납골당을 만드는 석재상에서 보기에도 가격이 많이 나갈 것 같은 돌-아마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겠지?-로 좀 과장하면 그 안에 들어가 사람이 살아도 좋을 만하게 큰 납골당을 전시해 놓는 것이다.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어서 그런 것이라고 여기면 한참 잘못 생각한 것이다. 죽은 다음에 저렇게 묘지를 치레해서 뭐하느냐는 물음에 나로서는 마땅히 대답할 거리가 없기 때문에 그런 데를 지나자면 공연히 화가 난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 두기도 하고 여행기에서 뭐라고 하기도 했다.

우리의 정도를 넘는 묘지 치레에 대해서 한마디만 하고 넘어가야겠다. 이번에 도보 여행 비슷한 것을 하면서 언짢았던 것은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묘지를 꾸미는 돌을 취급하는 석재상을 지나는 일이었다. 저렇게 큰 돌을 가지고 으리으리하게 비석을 세우고 납골당을 만들어서 뭐하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죽은 이의 안식처는 결국 한 줌의 흙밖에 더 있을까! 정말로 조상을 기리고 싶다면 그가 살았던 모습을 꼼꼼하게 정리하여 책으로 남기는 게 여로 모로 좋을 것이다.(여행기 전문)

사람마다 저런 석재나 묘지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조상의 이름깨나 알려진 가문에서 다른 사람들 보라고 하는 작태일 것이다. 혹시 누가 예민하게 구는 내 반응을 두고 보잘것없는 내 출신에 대한 자격지심에서 나오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부인할 자신도 없고 굳이 그러고 싶지도 않지만 개인 심리의 차원을 훌쩍 넘어서서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는 있다.

 

무엇보다도, 납골당이든 납골묘든 묘지를 쓰자면 땅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보건복지부가 파악하고 있는 것을 보면, 70% 이상이 산림지역에 들어서 있는 전국의 묘지가 차지하는 면적은 전토의 1%인 998㎢에 이른다. 해마다 20여만기의 묘지가 새로 생기면서 이 면적은 해마다 여의도 시가지 면적의 두 배 꼴인 600여㏊ 가량씩 늘어나고 있다. 환경단체들이 산림훼손의 또다른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는 전국의 골프장 면적이 193.9㎢(문화관광부 ‘2005 전국 등록, 신고 체육시설업 현황’)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묘지에 의한 산림 훼손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기사 전문)

돌아다니다 보면 주위로 미뤄 보건대 나무가 무성하게 자랐을 곳에 떡하니 무덤을 만들어 산림을 보기 흉하게 하는 모습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나는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우리의 묘지 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곤 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으랴! 언젠가는 없어지고 말 텐데 또 다른 생명인 나무를 죽여 가며 무덤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빈손으로 왔으면 이승의 것 다 버리고 빈손으로 가는 것이 순리다. 한 시대를 호령하던 자의 무덤도 오래 되면 흔적조자 없어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자연스러운 죽음의 완벽한 결말은 주검을 벌판에 내다버려 들짐승이나 독수리 같은 날짐승의 먹이가 되게 하는 것이겠지만 이제는 그럴 만한 장소도 없거니와 시대의 분위기와 안 맞을 것이 분명하니 조금 그 정도를 낮춰서 수목장이 어떨까 한다. 그런데 수목장은 도대체 뭔가? 구체적인 실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지난 2004년 9월 어느 바람 맑은 날 경기도 양평의 고려대 농대 연습림 한 가운데서 특별한 장례식이 열렸다. 유족들은 한 참나무 아래에 구덩이를 판 뒤 작은 상자에 모셔온 유골을 넣고는 다시 흙으로 덮었다. 그것이 끝이었다. 봉분도 만들지 않았고, 묘비도 세우지 않았다. 다만 바로 위 참나무에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라는 작은 푯말 하나를 달았을 뿐이다. 원로 임학자 김장수 고려대 농대 교수의 유족들이 "죽어서 나무로 돌아가겠다"고 한 고인의 뜻에 따라 치른 '수목장'이었다. (위의 기사)
내 아내와 나는 먼저 가는 사람에게 수목장을 치러 주기로 합의를 봤다. 묻힐, 정확하게 말하면, 유골이 뿌려질 데는 내가 잘 가는 수락산도, 내 고향의 숲도 다 좋겠다. 여러분은 어떤가?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