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몸에 좋다는 얘기는 많이 듣는다.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는 사실이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는 것도 웃음 못지않게 좋단다. 좀 뜻밖이겠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그럴듯한 바가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먼저, 우리 소설에서 기억에 오래 남을 아름다운 장면을 감상하고 나서 눈물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영달이가 뒷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오백원짜리 두 장을 꺼냈다.
"저 여잘 보냅시다."
영달이는 표를 사고 삼립빵 두 개와 찐 달걀을 샀다. 백화에게 그는 말했다.
"우린 뒤차를 탈 텐데…… 잘 가슈."
영달이가 내민 것들은 받아 쥔 백화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그 여자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아무도…… 안 가나요?"
"우린 삼포루 갑니다. 거긴 내 고향이오."
영달이 대신 정씨가 말했다. 사람들이 개찰구로 나가고 있었다. 백화가 보퉁이를 들고 일어섰다.
"정말, 잊어버리지…… 않을게요."
백화는 개찰구로 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돌아온 백화는 눈이 젖은 채로 웃고 있었다.
"내 이름 백화가 아니에요. 본명은요……이점례에요."
여자는 개찰구로 뛰어나갔다.(황석영, <삼포 가는 길>(1973), <<삼포 가는 길>>, 창작과비평사, 2000, 223-4쪽)
백화는 군인을 상대로 하는 술집 작부인데 고향에 가고 싶어 도망쳐 나왔다. 그 길에서 뜨내기 노동자인 영달이와 정씨를 만나 기차역까지 동행하게 된다. 서로 감출 것이 없는 비슷한 처지라 쉽게 가까워진다. 그렇지만 백화는 자기 이름은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인 셈이다. 그런데 소설의 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위의 장면에 이르러서 그녀는 눈물을 보이면서 이름을 밝힌다. 마음을 완전히 연 것이다. 눈물이 시킨 일이다. 눈물을 흘린 것과 함께 일어났다고 해도 좋다.
아마 다, 실컷 울고 나면 가슴이 시원해지는 경험을 한 일이 있을 것이다. 이른바 카타르시스다. 원래 이 말은 몸 속에 들어 있는 나쁜 것을 밖으로 배출시키는 설사제를 뜻했다. 지금은 마음을 깨끗하게 해 준다는 의미로 쓴다. 바로 눈물이 이 일을 한다. 눈물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마음의 때―편견, 헛된 욕망―를 씻어내 자신을 넘어서도록 한다. 불쌍한 이들에 대한 동정심, 자신의 잘못과 한계에 대한 솔직한 인정,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깊은 공감은 눈물을 불러온다. 속이 상해서 흘리는 눈물도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을 반성하는 쪽으로 향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리 예외는 아니다. 이러니 눈물이 몸과 마음에 안 좋을 리가 없다.
잘 웃거나 울자면 다같이 마음을 비워야 한다. 무엇에 집착하면 다른 데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없어서 마음과 몸이 늘 무겁다. 이런 사람은 울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울려고 노력해도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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