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초등학교 시절의 내 공부

귤밭1 2006. 5. 30. 00:06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이전의 아이를 가진 부모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 있어서 옮긴다. 우리 아이들이 부모의 의지에 따라 억지로가 아니라 즐겁게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글 읽기' 두뇌도 준비 필요, 7살 이후 배울 때 재미 커져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들의 부모에게 유난히 강조되는 사자성어가 있다면 바로 ‘유비무환’이다. 실제로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이 유치원에도 가기 전에 적어도 한글은 깨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몇몇 행운아를 제외하고는 아이들은 이런 말을 듣기가 쉽다. “저 집 아이는 그림책을 줄줄 읽던데 너는 어찌 된 게 글씨에 통 관심이 없니?”글을 빨리 깨우쳐야 책을 더 많이 읽을 것이고, 공부를 잘 할 것이라는 것이 부모의 기대이다. 그런데 이런 삼단논법은 성립하지 않는다.

 

단순한 훈련을 통해 글 읽기를 배우는 것은 5살 미만의 어린 아이들에게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특정 자극을 주고 그 자극에 적절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낮은 수준의 두뇌 발달로도 충분한 일이다. 예를 들어 그림과 글씨가 앞뒤로 적힌 카드를 가지고 아이가 맞는 글씨를 말하도록 할 수는 있지만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읽기라고 할 수 없다.

 

글을 읽기 위해서는 우선 시각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눈과 물체 사이의 거리를 유지해 초점을 맞추는 것이 우선이다. 다음으로 글씨와 단어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눈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사실 많은 아이들이 이런 기본적인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글씨를 읽도록 강요받고 있다. 이들은 결국 읽기를 무척 괴로운 것으로 여기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시각적인 준비가 된 뒤에는 추상적인 사고력이 발달해야 한다. 우선 글자가 어떤 소리를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며, 소리와 의미를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글 읽기에는 적극적으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때 의미 찾기는 상당한 정도의 두뇌 성숙을 필요로 한다.

 

여러 나라에서 한 실험 결과를 보면 5살에 글을 가르치는 것보다 7살에 가르치면 훨씬 쉽고 즐겁게 배운다는 것이 입증됐다. 두뇌가 어느 정도 발달해서 글 읽기의 준비가 끝났기 때문이다.

 

준비가 덜 된 두뇌에도 훈련을 통해 기술을 습득하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기술을 배우기 위해 그 시기에 갖춰야 할 다른 발달 과제를 포기할 정도로 글 읽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또 수동적인 훈련을 통해 글 읽기를 배운 아이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글에 대해서 수동적인 자세를 갖는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읽으려 하지 않으며, 의미를 찾지도 않는다. 의미를 파악하면서 글을 읽는 재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글을 못 읽는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높은 지능의 아이 가운데 많은 수가 글을 일찍 읽어내지 못하기도 한다. 글 읽기는 아이들이 가진 지능의 일부분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읽기 영역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일부 아이들이 일찍부터 스스로 글씨를 깨우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저절로 거의 본능적인 수준에서 글자를 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아이들이 반드시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늦게 글을 읽더라도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운 아이들이 4학년 이후에는 훨씬 높은 학업 성취를 보인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과제 하나가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함께 놀고, 경험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이 모두가 공부이다. 때로는 교육을 위해 교육을 포기하라는 말을 해 주고 싶은 때가 요즘 유아 교육의 현실이다.

 

서천석 행복한아이연구소장(소아정신과 전문의) (원문)

마지막의 "교육을 위해 교육을 포기하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는 말이 내게는 그럴듯하게 들린다. 책 공부만이 아니라 또래끼리 흙 장난 하면서 노는 것도 훌륭한 공부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길게 보는 여유를 가지면 살면서 하는 게 다 공부거리가 된다.

 

위에서 한 주장의 구체적인 예라고 하면 이상하지만 그 비슷한 것을 말한다는 기분으로 초등학교 시절 얘기를 좀 할까 한다. 나는 초등학교 들어가서도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내가 특별히 둔해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랬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또 그때의 감각으로는 학교에 가서야 글자를 배우는 것이니 이상할 것 하나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당시 부모들은 극히 정상적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사였는데도 내가 까막눈이니까 외할아버지가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선생 아들인데 앞으로도 공부를 못하면 어쩌나 했던 것이다. 아무튼 학교 들어가기 전에 나는 어지간히 머리가 안 돌아갔나 보다. 어머니가 밥하다가 텃밭에 가서 파 같은 것을 뽑아 오라고 하면 나는 꼭 "몇 개?" 하고 물었다. 그런데 나는 그 간단한 숫자도 못 셌다. 어머니는 한껏 짜증을 내며 필요한 만큼의 손가락을 펴곤 했다. 그 짜증 속에는 그냥 아무렇게나 뽑아 오면 되는데 바보같이 숫자나 세느냐는 한심해 하는 생각도 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공부 같은 것은 시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술 먹기-우리 아버지의 술에 대해서는 여기를 보세요-도 바빴으려니와, 할아버지는 일본에 가 행방불명이고 그 바람에 할머니는 아버지가 아주 어렸을 때 재혼해서 형제 하나 없는 아버지가 큰할아버지 내외의 생활비까지 책임져야 했으므로 학교에서 돌아오면 바로 밭으로 나가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였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농사 책임자였으므로 더 바빴다. 이 글을 읽는 젊은 사람들은 유치원이나 과외도 있지 않으냐고 하기 쉬운데 그때 시골에 그런 곳은 아예 없었다. 아마 큰 도시에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아이를 가르치는 과외는 아주 없고, 유치원도 드물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공부라고는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한 채 학교에 들어갔다. 더구나 또래들보다 좀 모자라기도 했을지 모른다(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꼭 그랬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우리집에서 나보다 위로는 증조부님 내외와 부모밖에 없어서 공부에 관련된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잠재력이 개발되지 못해서 그렇게 보인 것뿐인지 모른다. 아마 형이나 삼촌이 있었더라면 좀 달라서 바로 아래서 얘기할 서글픈 사태까지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학교에 들어가서는 선생님이 칠판에 적는 것을 도무지 받아쓸 수가 없어서 옆 친구가 대신해 줬다. 그런 일이 한동안 계속됐는데 워낙 둔감해서 창피하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아라비아 숫자 2와 8을 제대로 못 베껴서 어머니의 측은한 눈길을 받은 기억은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요즘이라면 구박깨나 받았을 것이다. 아무튼 나도 사람인지라 조금씩 나아졌을 것이다.

 

내 머리가 깨고 있다고 스스로 느낀 것은 2학년 2학기 때였을까 구구단을 외울 무렵이었다. 문득 같은 단위의 숫자를 더한다는 원리가 머리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보다 아주 빨리 그 구구단을 욀 수 있었다. 선생님이 그 원리를 설명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고 내가 발견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일 게다. 사실이 어땠든지 간에 내 머리가 그때부터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기분이 좋았다. 당연히 그 다음부터 공부를 잘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부모님에게 공부하라는 말은 거의 들어 보지 못한 것 같다. 딱 한번뿐이었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땐가 농사일 바쁘다고 결석까지 시켰으니 어떤지를 대강 짐작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산수 시간의 저런 깨달음(?)이 있고 나서부터 공부를 즐겁게 했다. 당시는 교과서를 해설해 놓은 전과와 문제지인 수련장이 동아출판사와 이름을 잊어먹은 다른 출판사(혹시 교학사? 아무튼 그 제목은 <<표준 전과>>와 <<표준 수련장>>이다)에서 나왔는데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 네 권을 한꺼번에 다 사서 남김 없이 문제를 풀곤 했다. 부모님은 공부를 시키지 않는 대신에 책 사는 데 드는 돈은 달라는 대로 줬다. 제목이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는 어린이용 월간지와 <<소년 한국일보>>-이 신문에서도 문제를 냈는데 나는 꼭꼭 풀었다-를 정기적으로 구독할 정도였으니 시골 출신으로서는 꽤 호사한 셈이다.

 

혹시 내 자랑같이 들릴지 모르겠다. 지금 그럴 만한 처지에 있지 못하니 그럴 마음은 조금도 없는 채로, 스스로 알아서 즐겁게 하는 경지가 있으므로 우리 부모들이 여유를 갖자는 뜻에서 얘기해 본 것이다. 공부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부모가 시켜서 억지로 해야 했다면 나는 공부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만 같다. 또 이 글에는, 자식에게 과도한 신경을 쓰는 대신에 자신을 위하여, 예를 들자면, 글 쓰기 같은 것을 열심히 하자는 뜻도 들어 있다.

 

글을 마치면서 생각해 보니 마침 오늘이 어버이날이다. 부모님을 생각하고 또 내 자신이 우리 아이에게는 어버이이기도 하므로 부모의 구실을 점검하는 그런 시간이었던 셈이다. 부모님, 고맙습니다! 민애(딸 이름이다)야, 아무거나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즐겁게 하거라. (2005. 5. 8.)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