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열정은 으뜸 가는 사고력

귤밭1 2006. 8. 26. 11:29

생각하는 법을 이야기하면서 그 첫째 방법으로서 "늘 질문하자―고정 관념, 상식, 권위, 관습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한 적이 있다(여기를 보세요). 그런데 이렇게 질문하자면 뭐가 있어야 할까? 그 답은 열정이거나 이 낱말과 연관된 삶의 태도가 아닐까 한다. 열정을 지니면 세상은 온통 의문투성이가 된다. 그러니 호기심과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열정이야말로 으뜸 가는 사고력이라고 해야 한다. 마침 같은 생각을 이야기하는 반가운 글이 있어 옮긴다.
 

열정·호기심·희망은 사고력의 또다른 이름


 
‘사고력’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사고력을 단지 사고의 기능, 생각의 도구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오해 때문에 사고력 관련 책들을 보면, ‘관찰, 추론, 분류, 비교, 사실과 의견 구분하기, 공통점 찾기 등’을 훈련시키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고력’을 단지 ‘논리적 사고력’ 또는 ‘이성적 사고력’으로만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희망하는 것을 성취하고자하는 뜨거운 열정, 이 세계에 대한 진지한 호기심과 관심, 사람들과 관계에 대한 애정과 친절함, 지속적인 변화와 창조에 대한 갈망 등은 과연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요? 과연 이러한 삶의 요소들은 사고력과는 전혀 무관한 것일까요?

 

모든 사고력을 인도하고 이끄는 것은 관심, 호기심, 신기함, 궁금함입니다. 이것은 ‘당당한 시선’즉 이 세계에 대한 응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세계와 만날 수 있는 사고 능력인 것입니다. 호기심과 세계에 대한 궁금함이 부족한 아이들은 동기가 형성되지 않으며 무기력합니다.

 

행복함과 성취감을 맛본 사람은 ‘감사함’을 느낍니다. 성취할 때마다 자신이 성장함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성취는 자신감, 자신에 대한 긍정심, 자아존중감을 넓혀줍니다. ‘감사’와 ‘성취’는 항상 비례합니다. 그러므로 성취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감사’라는 사고의 능력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감사의 행위 또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희망의 원리>를 쓴 막스 에른스트는 ‘사유는 초월하는 행위이다’라고 말합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에너지 중의 하나는 아마도 ‘희망’일 것입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 바라는 것,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모두 희망입니다. 나 혼자만의 희망, 친구와 함께 이루고자 하는 희망, 지역사회의 희망, 자연과 함께 이루고자하는 희망, 세계의 희망, 그리고 우주의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은 이토록 다양한 겹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고력은 희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희망하는 것 또한 사고의 능력입니다. 희망은 꿈꾸게 하고 상상하게 합니다. 모든 희망은 변화에 대한 지향입니다. 새로운 실현에 대한 설레임입니다. 희망하는 능력에 비례해서 동기가 형성됩니다. 그러므로 희망은 행위를 지도합니다. 희망의 크기만큼 적극적이며 주도적인 실천이 이루어집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아이들의 본능입니다. 아이들의 눈은 항상 새로운 것, 신기한 것에 열려있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가 희망이며 새로운 시대, 열정적 성취의 주도자들입니다. 사고력 교육이 추구하는 것, 그것은 바로 열정적 성취의 능력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생각의 불꽃을 타오르게 하는 질문들

 

-생각만으로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눈도 두 개, 귀도 두 개, 손도 두 개, 다리도 두 개입니다. 왜 우리 몸에서 두 개로 이루어진 것이 많을까요?
-왜 대부분 식물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녹색으로 보이게 하는 것일까요?

차오름/지혜의숲에포크아카데미 원장 <엄마가 키워주는 굿모닝 초등 사고력> 저자 (원문)

질문이 없는 젊은이(여기를 보세요)가 늘어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호기심도, 현실을 넘어서고자(초월·부정하고자) 하는 비판 정신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족 하나. 다음과 같은 문장은 거슬린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에너지 중의 하나는 아마도 '희망'일 것입니다." 글쓰기 지도를 하다 보면 "삶을 살면서"라는 투의 문장을 흔하게 만난다. 이런 상투적인 어구는 아예 빼거나 꼭 있어야 한다면 간단히 '살면서'라고 하면 된다. "하는 데 있어"도 아주 어색하다. "하는 데서"라고 바꾸면 자연스럽다. 따라서 위의 문장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는 아마도 '희망'일 것입니다."라거나 "살아가는 데(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는 아마도 '희망'일 것입니다."라고 하면 된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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