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겨레>>(2002년 6월 24일)에서 읽은 아주 재미있는 시 소개합니다.
풍경소리 /전소영(마산여자고등학교 2학년)
이낭희 선생님 말마따나 무척 재미있습니다. 우리같이 둔한 사람에게 풍경소리는 엄숙하고 관념적인 소재입니다. 절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시인은 처음부터 그런 것과는 엇나가고 있습니다. 도를 닦는 절에서 터놓고 밥을 기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뭐, 밥에 길이 있기도 한 것-특히 저에게는 그렇답니다!-이라 지금 단계에서는 꼭 그렇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2연에 오면 상투적인 발상과는 반대로 가려고 하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엄마가 백팔배를 하러 갔는데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만 하고 있으니까요.
바람이 불어서 풍경 소리가 들립니다. 올려봤더니 풍경에 달린 물고기가 보입니다. 하도 배가 고픈지라 소릴 듣는 귀가 물고기를 먹어 버렸습니다. 물고기가 들어 찬 배는 이제 바다가 됩니다. 여기서 나는 사람의 배인지 바다에 뜬 배인지 구별할 수 없는 즐거운 혼동 상태에 빠지고 싶어집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빠진다'는 내 말도 지금 분위기에 딱 어울리네요!
아무튼 풍경의 물고기가 배로 들어왔으니 풍경소리는 이제 배꼽에서 나옵니다.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산과 바다를 마음껏 누비고 있습니다. 거기다 하늘을 보며 '저만큼이나' 배가 부르다고 하였으니 바다 속은 물론이고 저 하늘 높은 곳까지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우주적인 차원의 상상력이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에게 절에 와서 절만 하면 되겠느냐고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열어야 진짜 도가 보이는 것 아니냐고 옆에 있는 스님에게 들려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상상력은 아름다움의 영역을 넘어서 진리와 같이가는 셈이기도 합니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같이 올라온 평도 소개합니다.따뜻한 절밥 기대하며
씩씩하게 씩씩하게
몇십개의 계단을 오른 절
엄마 백팔배 절하러 들어간 사이
절간 마루에 던진 엉덩이가
고픔에 허덕인다
딸랑 딸랑
바람의 선물인 양
그렇게 부드럽게 달려와서
내게로 폭 안기는 풍경 소리.
내 귀는
초록 물고기를
단번에 먹어버렸다
딸랑 딸랑
밥도 들어가지 않은 배가
이제 저만큼이나 부르다
물고기 가득한
그러나 물고기만 있는 것이 아닌
커다란 바다가 되어
한번 출렁이는 배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배꼽 사이로
풍경 소리가 들린다.
무척 재미있습니다. ‘풍경소리’ 제목에서 고요한 산사의 풍경을 떠올렸던 저에게, 간간이 바람에 실려 흔들리는 ‘풍경소리’는 익숙한 산사의 잔잔한 여백보다는, 자신만의 재치와 꿈틀거리는 언어로 처음부터 끝까지 탄탄한 긴장을 만들어주는군요. 특히 9~10연에서는 눈앞의 ‘풍경’ 속 물고기가 어느덧 뱃속에 들어가 움직이고, 그 속에 딸랑딸랑,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기다린 듯이 수없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눈앞의 풍경과 내 안의 뱃속 광경을 번갈아 들여다보는 시선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8연 2행은 빼도 무방하지요. 톡톡 튀는 긴장을 지속하려면 사족은 과감하게 가지치세요. (하략. 전체 기사)
이낭희/문산여자종합고등학교 교사
이낭희 선생님 말마따나 무척 재미있습니다. 우리같이 둔한 사람에게 풍경소리는 엄숙하고 관념적인 소재입니다. 절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시인은 처음부터 그런 것과는 엇나가고 있습니다. 도를 닦는 절에서 터놓고 밥을 기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뭐, 밥에 길이 있기도 한 것-특히 저에게는 그렇답니다!-이라 지금 단계에서는 꼭 그렇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2연에 오면 상투적인 발상과는 반대로 가려고 하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엄마가 백팔배를 하러 갔는데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만 하고 있으니까요.
바람이 불어서 풍경 소리가 들립니다. 올려봤더니 풍경에 달린 물고기가 보입니다. 하도 배가 고픈지라 소릴 듣는 귀가 물고기를 먹어 버렸습니다. 물고기가 들어 찬 배는 이제 바다가 됩니다. 여기서 나는 사람의 배인지 바다에 뜬 배인지 구별할 수 없는 즐거운 혼동 상태에 빠지고 싶어집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빠진다'는 내 말도 지금 분위기에 딱 어울리네요!
아무튼 풍경의 물고기가 배로 들어왔으니 풍경소리는 이제 배꼽에서 나옵니다.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산과 바다를 마음껏 누비고 있습니다. 거기다 하늘을 보며 '저만큼이나' 배가 부르다고 하였으니 바다 속은 물론이고 저 하늘 높은 곳까지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우주적인 차원의 상상력이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에게 절에 와서 절만 하면 되겠느냐고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열어야 진짜 도가 보이는 것 아니냐고 옆에 있는 스님에게 들려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상상력은 아름다움의 영역을 넘어서 진리와 같이가는 셈이기도 합니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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