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009년 5월 23일, 토요일) 나는 책장을 정리했다. 그동안 모은 책을 여기저기 쌓아놓다 보니 방 주위의 책장은 물론이고 베란다와 방바닥까지 차지하게 되어 방 입구에서 컴퓨터와 책상이 놓여 있는 앞에까지만 비어 있을 정도가 되었다. 조금 과장하면 발디딜 틈이 없었다. 베란다나 방바닥에 있는 책을 찾아야 하는 경우에는 책을 하나하나 들어내야 하는 소동을 피워야 했다. 뭔가 해결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게끔 되어 버렸다. 그래서 책이 더 들어가는 책장을 새로 샀다. 이 참에 컴퓨터 책상을 치우고 컴퓨터를 책상에서 같이 쓰기로 했다. 그 책상도 책장에 연결되어 조금이라도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갈았다. 토요일, 그러니까 어제 책장이 오기로 했으므로 그저께는 하루 종일 내 방에 있는 책을 거실로 옮겼다. 점심도 걸러 가면서 다 마치고 나니 일을 해 보지 않아서 허리랑 여기저기가 쑤시고 팔도 많이 아팠다.
책장을 내 방으로 들여오는 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 소식을 들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왜 죽었느냐는 물음이 자꾸 나왔다. 그가 약하게 군 것만 같아 밉기도 했다. 떳떳하게 나가는 게 옳다 싶었다. 지금까지 의연하게, 가족이나 친구가 돈을 받은 게 밝혀졌을 때 변명하지 않고 그를 따르는 사람에게 자기를 버리라고 하지 않았는가(이 말을 들은 내 짤막한 소감은 여기를 보세요). 앞으로도 그런 태도로 가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동시에 분노가 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지경으로 몰고 간 이명박 정권과 검찰, 그리고 보수 언론의 그동안의 행태에 마구 상말이 나왔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몇 가지 매우 큰 잘못을 저질렀다. 가장 큰 것은 수사를 잘못해서인지 아니면 위쪽의 지시에 따른 건지 모르지만, 수사 방향을 철저하게 ‘노무현 괴롭히기’로 끌고 간 점이다. 적어도 많은 사람에게 그런 인상을 줬다. 노 전 대통령을 지난달 30일 소환조사하고도 한 달 가까이 기소 여부도 결정하지 않고 미루어 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간 검찰은 전직 대통령 정도의 인물을 수사할 경우엔 수사의 마지막 순서로 불러 조사하고 그 뒤 신속하게 신병처리 방침을 결정해왔다. 그게 관례였고, 예우였다면 예우였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달랐다. 신병처리를 질질 끌며 부인과 아들·딸 등에 대한 수사 강도를 높이며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그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 쪽을 모멸하기 위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수사내용이 하루가 멀다 하고 흘러나오곤 했다. 오죽했으면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 길을 가면서 짧게 남긴 유서에서까지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고 절규했겠는가.
사설이 잘 보여 주듯이 검찰은 한마디로, 형평성도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었다. 이런 검찰에 화답하여 조선일보는 아예 노대통령을 잡범으로 취급하면서 조롱거리로 삼았다. 그 구체적인 예를 여기에 들고 싶지만 눈만 더립힐뿐더러 내 품위를 낮출 것 같아 꾹 참는다. (참고로, 노 대통령의 서거를 다룬 조중동의 사설을 비판한 손석춘의 글은 여기를 보세요.)
또한 검찰은 박연차 사건을 수사하면서 극도로 형평성을 잃은 모습을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 그 주변 사람에 대해서는 샅샅이 이를 잡듯이 뒤져 허물을 들췄거나 들춰내려 했다. 반면 현 정부와 관계 있는 사람이나 자기 식구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느슨한 태도를 보였다.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박연차씨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받고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에게 전화한 사실을 파악하고도 미리부터 이 의원을 수사대상에서 배제했다. 또 이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고려대교우회장과 관련해서도 진작부터 매우 구체적인 연루 의혹이 나왔지만 수사를 미루다가 뒤늦게 균형 맞추기 제물로 끌어들인다는 인상을 줬다. 제 식구인 검사들의 경우에는, 불러 조사하는 동시에 ‘돈은 받았지만 업무 관련성이 없어 처벌이 어렵다’는 면죄부를 줬다. 임채진 검찰총장, 이인규 중수부장, 홍만표 수사기획관 등 이번 수사의 핵심인물들은 항간에 일고 있는 정치수사, 편파수사 의혹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이번 수사의 시작은 지난해 7월 청장 연임을 노리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태광실업 특별세무조사와 그 결과의 청와대 보고였다고 한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올해 3월부터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수사 전개로 볼 때 노 전 대통령을 탐탁지 않게 생각해온 청와대 핵심의 의중이 반영됐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정치검찰도 문제이지만 이참에 검찰을 정권의 하수인처럼 부리려는 권력자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사설 전문, 이 글과 이 글도 보세요.)
주위에서는 하나같이 슬프다고 한다. 눈물을 그칠 수 없다는 말도 들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열렬히 그의 편을 들었던 것을 아는 내 친구는 조문 안 가느냐고 묻기도 했다. 왜 이렇게 슬픔의 바다를 이룰까? 나는 그 결정적인 이유로 그가 이상의 인간이라는 점을 들고 싶다. 슬픔은 앞에서 연결한 내 소감에서 말했듯이 이상적인 것이 부재한다는 느낌에서 오는 반응이다. 이상으로 여기는 인간이 사라져서 우리는 슬픈 것이다.
우리 정치인 가운데서 이상 하면 가장 많이 떠올릴 사람은 아마 노무현일 것이다. 5공 청문회, 김영삼이 주도한 삼당 합당,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우며 출마한 국회의원 선거 등에서 그는 이상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점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아마 이것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요컨대 그는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리고 순수했고 뻔뻔하지 못했다. 그 전의 대통령과 비교하면 이런 점이 아주 또렷이 드러난다. 이런 이상이 그를 자살로 몰고 갔을 것이다. 가족과, 가까운 이들이 받은 돈이지만 그는 아무런 변명 없이 자기 책임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우리 정치인 가운데 누가 이래 본 적이 있을까? 과문해선지 몰라도 내게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참고로, 노무현 전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은 여기를 보세요.)
그가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니겠냐고 했지만 죽음의 무게가 삶과 같을 수는 없다.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듯이 이번에도 그런 심정으로 자살을 감행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죽음이 단순한 도피일 수는 절대로 없다. 이명박 정권이나 검찰은 이 점을 제발 좀, 아프게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형평성을 중시하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도록 노력했으면 한다. 국민의 슬픔을 일시적인 감상으로 여겨서 과소평가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았으면 한다. 슬픔이 모이면 큰 힘이 된다는 걸 부디 명심했으면 한다.
지금도 거실에는 방에 있던 책의 1/4 정도가 이삿짐처럼 쌓여 있다. 그런데 방에 들여놓은 책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많이 버린다고 했는데도 그렇다. 방바닥에 쌓아 놓지 않으려면 다시 추려야 한다. 참 어렵다. 아니, 불가능할 것 같다. 몇 권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앞으로 읽을 기회가 없을 테고, 혹시 읽게 되는 경우가 생기면 도서관을 이용해도 되리라는 점을 머리로는 수긍하면서도 욕심이 앞을 가려 마음을 비우지 못하는 것이다. 책 한 권 버리기도 이렇게 힘든데 어떤 사람은 그 소중한 목숨까지 던져 버렸다. 내가 한없이 작다는 게 실감이 된다. 그래서 처음에 소식을 들었을 때 가졌던 미움은 철회해야겠다. 그렇다. 슬픔과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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