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진리에 기반을 둔 말이나 행위는 불합리한 다른 조건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으니 그렇다. 그런데 진리에 대한 집착은 주체의 자유를 구속하기도 한다. 어떤 진리를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은 그 진리가 요구하는 대로 행동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기까지 한다. 지하철 같은 데서, 자기네들이 믿는 종교를 소리 높여 선전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라. 시끄러운 것도 참기 어려운데, 그네들이 하는 식으로 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협박까지 한다. 무서워라! 물론 그들의 안타까움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다. 그들이 보기에는 저 불쌍한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호르헤라는 광신도가 있다. 그는 40여 년 동안 수도원의 주인 행세를 하며 이단으로 금지한 책에 수도사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 대표적인 금서가 웃음을 긍정적으로 다루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실제로는, 존재했으리라 짐작되지만 전해지지 않는-이다. 대체로 웃음은 진리라고 하는 것을 불손하게 대한다. 진리를 안다고 생각하면 진지하고 심각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웃음 쪽에 선 사람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호르헤가, 능히 악마의 대리자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저 나름의 진리를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허위로 여겨지는 것과 몸을 바쳐 싸울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호르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책을 두려워한 것은, 이 책이 능히 모든 진리의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방법을 가르침으로써 우리를 망령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해 줄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움베르토 에코, 이윤기 옮김, <<장미의 이름>>(하), 1992, 열린책들, 762-3쪽)
진리라고 하는 것은 어떤 조건에서만 진리가 된다고 여유있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 특히 인간의 삶을 다루는 분야에서는 그렇다. 이른바 절대적인 진리는 사실에 기반을 둔 것이기보다는 주관적인 신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평소에,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는 유연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번에 강정구 교수의 주장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을 보면서 이런 여유가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고 웃으면서 편하게 받아들이면 될 텐데 우리 사회가 당장에 어떻게 될 것처럼 한나라당과 검찰을 비롯한 이른바 '애국 세력'이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그를 구속해서 수사하지 않았다고 해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국가의 보안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는가? 물질뿐만 아니라 감정도 지나치게 낭비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래서 이번의 사태를 차분하게 바라보는 사람에게 이들의 과도한 열정은 바보 짓으로만 보인다(사실, 그를 구속하지 말고 수사하라는 법무무 장관의 뜻을 수용하고서도 항의의 표시로 사표로 쓴 검찰총장의 처신은 바보의 그것이었다. 사표를 내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장관의 뜻을 받아들이지 말든지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검찰의 바보스러움(혹은 '검사스러움')에 대한 통쾌한 풍자는 김어준의 글을 보세요.).
진리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사실을 섬기겠다는 겸손한 마음에서 나온다는 점도 덧붙이고 싶다. 프로이트의 말로 설명을 대신하자.
꿈의 해석의 결론이 여러분에게 기분 나쁜 아주 부도덕적인 것으로 생각된다고 하여 그것이 어떻다는 것입니까. 나는 젊었을 때 나의 은사 샤르코 선생이 이와 같은 경우에 '사실이 그런 것을 어떻게 할 수 있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즉, 이 세상을 현실에 있는 그대로 알려고 한다면, 겸허한 태도로 자기의 동정심이나 반감을 철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프로이트, 김성태 역, <<정신분석 입문>>, 삼성출판사, 1990, 157-8쪽)많이 읽고, 놀고, 돌아다녀서 세상의 다양한 진리와 적극적으로 만나자. 그럴 때 진리는 우리를 한없이 자유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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