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내 생각에 그것은 무엇에 대해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보다는 어떤 것을 모른다는 것을 의식한다는 것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래서 모르는 것이 있으니까 알려고 노력하게 된다. 읽을수록 모르는 게 많아지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다. 책이 책을 부른다고 할 만한 현상이 나타난다. 책들로 이루어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곳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모른다고 의식한 것에 대한 뜻하지 않은 선물이다!
그런데 반대로 책을 읽지 않으면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르니까 거꾸로, 다 아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책이 필요 없다. 모르는 것이 없는데 뭐하러 머리 아프게 책을 읽겠는가! 아는 사람이 보기에 무식한 사람들은 동물처럼 산다.
제대로 안다는 것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므로 물음을 던지는 행위이기도 하다. 묻지 않는 삶! 이런 삶이 불행한 것이라면 그 책임은 질문보다는 정답을 요구하는 분위기에서 자라도록 한 데 있을 것이다. 정답을 아는 것은 쉽다. 정보를 모아 놓은 책을 외우면 된다. 그러나 질문은 여간해서는 잘 나오지 않는다. 문제를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봐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어떤 경우에는 기존의 답이 갖고 있는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도 요구된다. 억압적인 사회에서일수록 정답은 힘이 센 사람들이 정해 놓은 것이 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문제 제기를 억압하거나 심지어 금지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권력이야말로 지식(진리)이다. 이렇게 위협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창조적인 질문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해오던 대로 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습관의 힘은 무섭다. 그래서 상투적인 대답과 삶이 나오게 된다. 이렇게 금지와 습관에 길들여진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능력과 소질을 묻지도 않은 채 점수에 맞춰 대학도 가고 전공도 정한다. 질문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질문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젊은이에게는 이런 조건이 꼭 필요하다. 그래야 학문이 발전하고 개인적인 성숙도 도모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물음의 발견'이야말로 과학 발전의 터전이라는 말은 아주 그럴듯하게 들린다.
과학과 의학은 미리 주어진 수많은 물음들에 답하기보다는 새로운 종류의 물음을 '발견'하면서 발전해 온 것이다.(강신익, <끝나지 않은 면역 논쟁>, <<한겨레>>, 2006. 3. 3, 원문)
사실, 같은 대상에 대해 많은 이론들이 공존하는 것은 새로운 물음에 답을 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창조적인 물음이 있어야만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다,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냈을 때만 자기의 참다운 지식이 된다는 점도 덧붙여 두자. 이렇게 얘기하면 모르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 앎이라는 역설적인 사실이 어느 정도 설명됐을 것이다.
열심히 묻자, 자기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열정적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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