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좋은 글 한 편 읽어 보세요

귤밭1 2006. 12. 29. 07:34

좋은 글이 갖추어야 할 성질의 하나로 구체성을 들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 적이 있다.

세상의 일은 다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겉과 속이 같다면 학문은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보이는 것 속이는 안 보이는 측면이 숨어 있습니다. 이러한 연관성을 보이게 해야 좋은 글입니다. 이게 구체성입니다. 그러니까 구체성이란 말은 전체를 이루는 요소들의 연관 관계를 드러낼 때 얻어지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어려운 말로 매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체성은 매개된 직접성이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 이르러서야 참다운 구체성을 이뤘다고 할 수 있는데 다른 말로는 전체와 부분의 변증법이라고도 부릅니다.

사람은 그의 현실의 부분과 전체를 보고 산다. 그러나 이 현실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나 이를 의식 속에 투영하여 파악함에 있어서 전체와 부분의 균형을 바르게 유지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 균형을 유지하려면, 긴장과 갈등과 투쟁을 무릅쓸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긴장이 커짐에 따라 많은 경우 우리는 현실의 한쪽을 선택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한쪽만의 선택은 우리에게 현실의 전모를 돌려주지 않는다. 우리가 현실의 부분에 눈길을 모으고 그것을 틀림없이 포착하려고 하면, 이 부분은 그것을 포함하는 전체에 의하여 뒤틀리고 제약되었음이 드러나게 되고 따라서 우리가 보는 부분은 현실의 참된 모습이 아닌 것이 된다. 그러나 현실의 전체를 보는 눈은 사람의 세계와 생리적으로 감각적으로 교섭하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명백한 사실인 구체적인 사실을 잃어버리고 만다. 언제나 전체가 부분의 총화보다 크다고 하더라도 전체는 부분의 집합에 기초해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생존에 의하여 매개되지 않은 어떠한 전체적인 현실도 참다운 의미의 전체일 수 없고 단지 퇴화된 전체의 겉껍질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의 현실을 의식의 대상으로 또는 의식적인 의도의 대상으로 삼고자 할 때, 우리는 언제나 이러한 부분과 전체의 변증법에 부딪치게 된다. (김우창, <<궁핍한 시대의 시인>>, 민음사, 1977, 12쪽)

나무는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말은 바로 이 변증법의 구체적인 실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를 아무리 자세하게 그리고 직접 보듯이 묘사했다고 해서 나무를 다 드러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숲과 연관해서 어디쯤 자리잡고,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등을 살펴야 어느 정도 나무에 대해서 얘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문)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측면을 잘 보여 주는 좋은 글을 만났기 때문이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는 분은 꼭 읽어 보기 바란다.


연말정산이 씁쓸한 까닭


김종엽 | 한신대 교수
 
다들 12월엔 바쁘다. 해 넘기지 않고 끝내야 하는 일에 바쁘고 송년회로 바쁘다. 12월을 분주하게 하는 일 가운데에는 과세대상이 되는 근로소득 가운데 일부를 공제받기 위한 연말정산도 있다. 연말정산이라는 게 영수증을 모으는 등 부지런을 떨면 꽤 절세가 되니 소홀히할 수도 없지만 은근히 성가신 일이기도 하다. 국가는 손쉽게 원천징수를 하고 공제를 받기 위한 수고는 몽땅 내가 해야 하는 식이라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도 품을 팔아서 돈을 버는 기분으로 하면 못할 것도 없다고 마음을 고쳐먹고 꼼꼼히 챙겨본다.

 

하지만 그러고 있노라면 다시금 마음 한구석이 찜찜해진다. 소득세는 한 국가의 시민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는데, 그 소득 가운데 특정 용도로 사용된 돈을 과세대상에서 빼준다면, 그 공제 또한 공정성과 연대의 원리에 입각해야 맞을 것이다. 그런데 소득공제 규정들을 따라 연말정산 서류를 작성하다 보면 도무지 어떤 근거를 가진 것인지 납득이 안되는 항목들이 꽤 있다. 그중에는 생각해보면 괘씸하게까지 느껴지는 것도 있는데, 연금저축이 대표적이다.

 

2001년 이후에 연금저축에 가입한 사람은 연금불입액 가운데 240만원을 공제받을 수 있는 데, 올해부터는 그 액수가 300만원으로 상향조정되었다. 임금소득이 없는 배우자나 자녀에 대한 공제액이 각각 100만원이고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에 대한 공제액도 각각 100만원에 불과한 것을 생각하면 연금저축에 대한 공제액은 상당히 큰 편이다. 이런 연금저축 공제의 의도는 얼핏 보기에는 선량한 것 같다. 노령화 사회를 앞두고 사람들이 노후생활에 대비할 수 있게 하고 그런 개인의 노후 대비를 위한 노력에 대해 정부가 소득공제의 형태로 지원을 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런 연금저축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이 제도는 소득역진적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은 이 제도를 이용해 노후도 대비하고 절세도 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아예 이용도 할 수 없거나 한다고 해도 적은 액수밖에 불입할 수 없어서 공제도 적게 받기 때문이다. 소득공제가 이렇게 소득역진적인 형태로 이뤄지는 것은 본래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여기에 더해 이 제도는 사회성원의 미래를 연대의 원리에 입각한 연금제도 안에 통합하는 것을 포기하고 시장에 내맡겨버린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된 맥락을 재구성해본다면 이럴 것이다. 한편에는 잘못 설계되어 기금이 고갈되었거나 고갈 직전이어서 제구실을 할 수 없게 된 골칫덩어리 연금제도를 쥐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국가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부실한 연금에 대한 대중의 불안에 기생해서 보험상품을 더 많이 팔고 싶은 보험회사들이 있다.

 

보험사는 국가에 이제 사람들 스스로 노후를 책임지게 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자가보험에 대해 소득공제를 해주자고 부추긴다. 국가는 연금저축을 통해 노년의 불안을 개인적으로 덜어낸 사람들은 자연히 공공연금 부실에 대한 국가 책임을 덜 추궁할 것이라 생각하고 이 제안을 덥석 받는다. 아마 잘 포장하면 국민들에게 생색마저 낼 수 있다는 달콤한 생각도 한 것 같다. 그리고 보험사는 연금저축이 노후도 노후지만 무엇보다 절세에 도움이 된다고 사람들에게 속삭인다. 이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덜고 절세라는 덤을 얻을 수 있다는 유혹에 사람들이 이끌리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렇게 이 제도가 만들어진 맥락이 고약한 구석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통해 상당수 사람들이 혜택을 보기는 본 것일까? 아직 만기가 돌아오지 않아서 연금저축에 대한 총평은 어렵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통계는 이 제도가 대중에게 실익을 안겨줄 것이라 믿기 어렵게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질병과 재해와 노후에 대한 불안으로 사보험에 불입하고 있는 돈은 한해 60조원쯤 된다. 그런데 보험사들이 한해에 지급한 보험금은 43조원에 불과하다. 아직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보험금을 염두에 둔다 해도 우리나라 생보사들이 얻는 수익은 한해 십조원을 훌쩍 상회함을 알 수 있다. 부실한 공적보험과 연금 탓에 사보험이 엄청나게 팽창해 있지만, 이윤을 제1원리로 삼는 보험회사들은 보험금 지급에 지극히 인색할 터다. 당연히 다치고 아파도 희한한 약관에 걸려 보험금을 제대로 못 받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흔히 공적부문의 비효율을 이야기하지만 효율적이라는 시장의 댓가 또한 엄청나다는 것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예가 있을까?

 

보험회사로 흘러들어간 방대한 자금이 어떻게 굴려지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문제가 여기서 그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생보사인 삼성생명을 보자. 삼성생명의 매출액은 2003년에 이미 23조를 넘었다. 삼성생명이 보험료로 거둬들인 돈이 삼성그룹 전체의 자금줄 노릇을 하는 것은 물론,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순환출자의 핵심고리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우리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사람의 하나인데, 그 지배력의 한 뿌리가 우리가 낸 보험료인 셈이다. 그의 권력을 쌍수로 환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입맛 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우리 사회를 휩쓴 가장 큰 문제라면 단연코 부동산이다. 천정부지로 가격이 뛰는 부동산에 흘러드는 돈의 큰 줄기는 부동산 담보 대출금이다. 집 가진 사람이 그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또 집을 사거나, 집 없는 사람이 살 집을 담보로 융자를 얻어 집을 사고 있다. 그런데 이 부동산 담보 대출의 출처에는 은행만이 아니라 엄청난 자금을 축적한 굴지의 보험사들도 있다. 아마도 보험사 직원은 저금리 하에서 보험금의 수익성을 높여 가입자에게 도움이 되고자 그리했다고 변명할 테고, 그게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뒷면에는 우리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해서 낸 보험료가 우리를 위협하는 부동산 가격 앙등을 야기하는 원인의 하나라는 사실이 숨어 있다. 건강한 공공부문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회는 이렇게 자기패배적인 제도 속에서 굴러가게 된다. 해서 연말정산이 씁쓸하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로 <<웃음의 해석학>>, <<연대와 열광>> 등이 있음. 2006.12.26 16:21 l ⓒ 김종엽 2006 (원문)

뭐라고 덧붙일 필요도 없이, 부분에서 전체로 나가는 길이 아주 뚜렷이 보인다. 이렇게 된 데는 글쓴이의 남다른 통찰력도 통찰력이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세상에 무관심하고서는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아울러, 세금 공제 받는 것밖에는 생각지 못한 내 무식과 무심이 부끄럽다.

 

참고로, 나는 이 필자의 글을 좋아하여 '훈이네 집'에도 옮긴 적이 있다. 여기를 보세요.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